성과 생식에 대하여 — 테라 스타일
2001년 4월 14일
자, 지금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대화에서 우리는 당신들이 테라에서 체험하게 될 하나됨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지속적인 경험이 될 것이며, 당신은 당신이 지각하는 모든 것 — 무한히 작은 것이든 혹은 전체 우주만큼 거대한 것이든 — 의 부분으로서 자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3차 밀도 인간의 성적 행위를 위한 주요 이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성적 행위를 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뿌리까지 분석해 들어가보면, 그것은 일개 몸에 갇힌 감옥을 탈출하려는 시도이며 어떻게든 피부의 경계를 깨뜨리고 다른 개체와 융합하려는 시도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적인 행동이 두 사람을 <맺어 주는데>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없이 알고 있고, 또한 한 사람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그만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곧 보게 되겠지만 성적인 에너지의 왜곡이자 남용입니다.
현재의 유형을 비난하기 보다, 우리는 우선 당신을 위해 테라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될지 — 비단 인간 종뿐 아니라 성적인 방식으로 맺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생명 형태에 있어서 — 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대조에 의해서 당신은 지금의 당신들의 경험이 얼마나 만족스럽지 않으며, 모든 것으로부터의 고립과 분리감을 오직 일시적으로만 완화해 줄 뿐이라는 것에 대한 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금욕적인 독신주의나 수도 생활같이) 성적 기능으로부터 도피처를 구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삶의 완전한 표현을 회피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러한 생활로부터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당신이 완전한 의식 속에 있으면서 당신의 타고난, 신에게서 부여 받은 능력을 초월하기 위해 억누르느라 애쓰지 않게 될 때의 삶이란 어떠할 것인지 당신 앞에 놓아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테라에서 당신은 모든 창조물과 완전한 하나됨 속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에서 이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현재 전망에서 보면 초현실적이며 꿈과 같이 보일 의식의 바다에 잠기게 될 터인데 — 그것은 아편이나 그 아류인 어떤 약물에 의해 경험되는 상태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신의 지속적인 상태가 될 것이므로 사람들은 단순히 그것을 표준적인 존재 상태로 적응하고 몸에 배게 할 것입니다.

테라에서는 모든 것이 전체와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므로 생식도 그런 맥락 내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꽃 한 송이도, 어떤 동물도 그것이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 속으로 들어올 명확하고 필수적인 “이유”가 없이는 피어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배우자 생식체(다양한 형태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번식하는 모든 것들은 균형을 영속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전체가 그들에게 요구할 때에만 번식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하게 들리지만,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자연스러운 유일한 방식이라는 것을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당신들이 현재 현실에서 보는 것들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너무나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당신은 “자연스러운” 것 (즉, 사물들의 내재되어 있는 <본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테라에서, 생식은 하나의 기능이며 그것은 성적 기능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당신들의 현재 현실에서는 그것들이 너무 얽혀있어서 자연과의 균형이 어긋나 있고, 그들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은 종종 서로 혼동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수많은 종교들 내에서 욕망과 성적 관심은 두려움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그것들이 뭔가 “죄로 가득 찬 것”이라거나, “야만”스럽거나, “미개한” 것이어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기능이 억압되면 물의 흐름이 막혔을 때처럼 그것은 다른 출구를 <찾을> 것이고, 바로 그것이 정확히 당신들의 현재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자연스러운 기능들은 당신들의 현재 문명의 모든 면에서, 지리적 위치나 소위 “계몽된”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꼬이고, 뒤틀리고, 전반적으로 곡해되고 있는데 그것은 정말로 분리의 경험에서 기인된 하나의 증상입니다.
테라에서 당신은 모든 사람 및 모든 것들과 저 멀리 우주까지 뻗어가는 모든 길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이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존재와 의식 속에서 자신 외의 모든 것과 공유하는 세계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미 모든 것과의 완전한 결합 상태에 있다면 그 세계에서 욕망이 들어갈 자리는 어디일까요?

욕망은 모든 창조성 뒤에 있는 엔진입니다. 그림을 그리던, 음악을 작곡하던, 우아한 수학 방정식을 고안하던, 혹은 또 다른 삶을 창조하던 말입니다. 욕망은 우주의 진화를 몰아가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모든 것을 체험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에게 모든 것을 <창조하게> 한 원동력입니다!
그 뿌리를 보면, 당신의 욕망은 창조계의 모든 부분들이 상호 작용하는 기전을 통해서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창조주의 욕망이 외부로 표출된 것입니다. 이 상호 작용은 접촉_Touch이라는 기능을 통해서 가장 격렬하게 체험됩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보고 그것과 시각적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말이나 텔레파시를 통해서 당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청각과 후각이라는 물리적 감각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중 어떤 것도 촉각만큼 완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당신은 상상력을 이용해서 뭔가를 만지면 어떠한지 비슷한 체험을 창조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만지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존재의 더 높은 수준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밑의 수준들을 완료해야만 합니다. 비록 당신이 엘로힘의 구체화된 일면이고 물질계로 <내려오긴> 했지만, 당신은 여전히 근원으로 돌아가는 이 여행의 “다음 단계”를 당신의 현재 체험 — 인간으로서, 피부의 옷을 입고, 분리 의식의 감옥을 탈출하려고 애쓰는 체험과 연관해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음 단계”를 오직 상상만 할 수 있으며 이것의 틀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미래에 우리는 사실 당신은 어디로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오늘 우리의 주제를 계속 탐구하게 해 주십시오.
촉각은 인간으로서 당신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감각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당신이 이미 사랑으로 가득 찬 자리가 아니라 굶주림의 자리에서 접촉하기를 추구한다면 당신의 번민은 지속될 뿐이며, 다시 추구하려 시도하거나 당신의 감방 — 당신의 몸, 당신을 담고 있는 용기, 당신의 상위 영혼의 손가락 끝에 씌워진 골무로서 현재의 시공간 속으로 밀어 넣어진 것 — 속에서 외로움과 고립 속에 남아 있는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잠시 그것이 마음에 새겨지게 하세요 — 그리고 공허함을 채우려고 찾아 헤매고 또한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든 당신의 삶들에 대한 자각이 이제 당신에게 돌아오게 하세요. 그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들을 가게 하세요. 당신에게 있어 그것들은 이제 전부 끝나가고 있습니다.

테라에서 성적인 방법으로 번식하는 모든 생명 형태들은 짝지어집니다. 그 범주에 드는 모든 생명 형태들은 우리가 한 쌍_dyad이라 부르는 자신의 쌍둥이 — 한쪽_counterpart — 와 쌍을 이룹니다. 각 상위 영혼은 창조주와 마찬가지로 자신 안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부분이나 양성(兩性)으로 나뉘어짐은 없지만,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창조주는 자신을 수많은 부분으로 나누어서 그것들이 다시 합치는 것을 추구할 수 있게 하고 — 일단 합쳐지고 나면 — 완전히 새로운 창조계로 다시 나뉠 터인데 — 이것은 창조주의 날숨과 들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날숨 — 형태를 형성하는 숨 내쉬기와 그 다음에 들숨으로 — 형태들이 다시 형체가 없는 합체로 합쳐지며 이것은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한 쌍_dyad(쌍자)은 사실 창조주(단일자_monad)가 자신을 부분들로 나누는 창조의 첫 단계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모든 수준에서 일어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형태 — 쌍둥이(“다른 부분”이라고 부르는 한쪽_counterpart이며 각 부분은 서로를 찾아서 결합합니다)에 계속 우리의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다른 하나의 “짝_mate”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짝짓기는 단순히 번식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짝짓기는 자신의 짝과 결합하는 행위이며, 생식은 새로운 존재나 단위가 전체의 균형을 위해 필요하기 전까지 유보됩니다. 테라의 인구 수준은 일단 식민지화가 완료되고 나면 꽤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나 일단 완료되고 나면, 이런 저런 방법으로 테라를 떠나는 형태들은 다른 것들로 대체될 것이며, 그럼으로써 전체의 균형이 유지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당신들은 매우 긴 수명을 누릴 것이며 성인으로 존재하는 전 기간 동안 생식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출산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난자와 정자 같은) 생식체들은 오직 또 다른 생명 형태를 창조할 필요가 있는 완벽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만 생성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수준의 앎에서의 자연스러운 형태의 “산아 제한”입니다. 우리는 또 다른 대화에서 출생에 관한 주제를 더 이야기할 것이나, 지금으로서는 오늘의 우리의 주제로 돌아갑시다.
당신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몸은 테라에서 당신들이 가지게 될 몸이 아닙니다. 지금의 당신들의 몸은 그 신체적 완벽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당신들이 신이나 여신으로 생각하게 될 종류의 몸으로 바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신체적 감각들은 나중에 당신들이 가지게 될 것들에 비하면 매우 조잡한 것입니다.
통나무처럼 생긴 연필로는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처럼, 현재 당신의 조악한 물리적 감각으로는 테라에서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관능의 섬세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관능_sensuality과 감각_senses 사이의 관계에 유의하세요. 성생활_sexuality이 성적 기능의 표현인 것처럼 관능은 감각적인(감각에 속하는) 기능입니다. 관능은 성생활과 서로 얽혀 있는데 왜냐하면 성생활은 적절하게 표현되기 위해서 감각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감각들은 성적 기능 —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당신이 “미묘”하다고 부를 직감적, 정신적, 그리고 감정적인 기능들까지 — 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당신들 중 완전한 성적 경험을 잠깐이라도 해 봤을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불행히도 그것은 관례라기보다는 예외에 속하며 당신들의 문화가 성생활을 두려움과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관능 역시 억압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테라에서 당신은 모든 속박 — 특히 경제적 속박 — 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완전 의식 속에서 수백 년에 달하는 수명의 축복을 누릴 것이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출산이라는 결과에 얽매임 없이 당신의 모든 감각과 성적 기능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기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관능 — 당신의 <모든> 감각들 — 의 모든 범위를 끝없이 탐색하는 자유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욕망은 마침내 무엇은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것은 안 된다는 규칙에 제한 받지 않고 온갖 것들의 창조를 자유로이 탐색할 것입니다. 항상 완전 의식 속에 있으면서 당신은 <알> 것이고, 직관적으로 생명을 지지하고 축하하는 표현들만 추구할 것이며 수많은 형태와 표현으로 있는 생명 전체를 지지하고 축하할 것입니다.
환희(황홀경)_Ecstasy는 당신들의 자연스러운 자산이며, (당신의 현재 현실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성적 기능은 — 당신의 모든 감각을 완전히 사용하여 — 그 황홀경을 최대로 채워줄 것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당신의 관심을 독차지할 것입니다.

당신이 모든 창조물, 특히 당신의 짝 — 당신의 한 쌍의 다른 쪽 — 과 끊임없는 교류 속에 있을 때는 항상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설사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 않을 때라도 당신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 사이의 흐름은 결코 끝나지 않는 춤처럼 끊임없이 계속되며, 이 창조에서의 당신의 남은 여행 동안도 그러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창조주의 마음 속에서 함께 태어났고, 창조주의 마음 속에서 함께 결합되며, 또한 창조주의 들숨이 끝나고 당신들의 존재가 창조주 안으로 녹아 들어 다음 창조의 날숨에서 존재 속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될 때까지 창조주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앞으로 즐길 것이 많이 있으며, 우리가 장담컨대 그것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당신들이 집으로 — 당신 자신으로, 테라로, 당신이 누릴 수 있는 경험의 전체 범위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생각이 아닌가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당신들도 동의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평화와 명예, 그리고 축복 속에서 당신들을 떠납니다. 아멘, 아도노이 사바요스. 우리는 천상의 주재자들입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다시 이야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