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테라와 오랜 기간 동안 연결되어 왔던 한 남자분이 다음에 나오는 체험을 2011년 10월에 나와 공유하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우리 모두와 공유할 수 있도록 그의 허락을 구하였는데, 그의 경험은 내가 개인적으로 체험하였던 것과 주재자들이 메시지에서 내게 말했던 몇 가지 것들을 보강해주고 입증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대양_OCEAN(신의 마음)” 체험

2011년 10월 18일

모두에게,

나는 오늘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기에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잠이 든 지 겨우 두 시간만인 매우 이른 새벽(약 오전 2시경)에 꿈이 아닌 ‘어떤 것’ 때문에 깨어났습니다. 나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내가 꾸었던 그 어떤 꿈과도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하나의 자각하는 점으로서 매우 유동적인 액체처럼 느껴졌던 <의식의 바다(대양)_Ocean of Consciousness>에 완전히 묻혀 있었고, 또한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재미있는 점은 내가 그 똑같은 길거리의 수십 개나 되는 버전_version들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들은 어쩐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또한 분리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이 계속되면서 나는 그 <바다(대양)>에서 <매우 거대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지하였는데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개개의> 일들은 <바다의 활동>의 <영향>이거나 <결과>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바다>의 의지와 활동의 결과가 아닌 것은 아무 것도 발생하거나 발현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단순한데—내가 보았던 모든 것은 활동 중에 있는 <바다>일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발현 중에 있는 바다_Ocean in manifestation였고, 일종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분리된 개체가 아니었습니다.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바다의 의지_will of the Ocean> 뿐입니다. 그 현현이 무엇이든—사람이든 산(山)이든—말입니다.

나는 일어나고 있는 모든 움직임이 대본_script에 쓰인 것들이란 것을 이해했으며 (바다와 연결 상태에 있는) 나는 그 대본을 알고 있었고, 장면에 나오는 모든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았습니다. 모든 개개의 세세한 일들도 단순히 그저 바다가 일어나기 원하는 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그 대본의 일부가 아닌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길거리 중에 특히 왠지 내가 주로 집중하고 있던 길거리의 풍경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을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극히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사람들은 피난처를 찾아서 달리고 있었는데, 매우 강한 지진이 일어나 길을 따라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들이 아이들 장난감처럼 굴러다녔습니다. 내가 주로 집중하고 있던 풍경 속에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는 동안, 같은 길거리의 다른 풍경들은 모두 동시에 행복하게 공존하고 있었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날씨는 맑았고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걷고 있었으며 차들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주로 보고 있던 풍경의 재난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지도 않았고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 주된 풍경에서 재난이 시작되기 전에 표면 아래에서 거대한 에너지적인 분류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에너지적으로 증식되고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에 대한 두 개의 에너지적 복제를 갖고 있는 한 사람이 나타나서 갈라지고/두 개의 서로 다른 풍경 속으로 잡아 당겨졌습니다. 그는 그의 복제가 밖으로 끌려 나올 때도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로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시간선들이 갈라졌을 때 사람들이 단순히 사라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시간선 위에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지만 우리의 시간선 위에 있는 그들의 판(버전)/몸들은 재난 속에서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즉각적으로 다른 시간선 위에 있는 그들의 몸 속으로 이동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탐험하는 쪽으로 끌리지 않았으므로 잘 모릅니다.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단 하나의 머리카락이라도 그것이 <바다의 계획_Ocean’s plan>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바다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그 느낌은 완벽한 안전함의 그것이었고, 어떻게 <모든 것>이 합주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바다와 하나였으며; 나는 문자 그대로 그것을 입고_wear 그것의 내부의 조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오늘(10월 18일)은 내게 있어 거대한 내면의 변화를 표시하는 날이며 내가 가졌던 이 경험은 여전히 나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고 있습니다. 내가 힐끗 봄으로써 실감했던 것은 주재자들이 말해 왔던 것들—오직 언제나 단 하나의 <존재>만이 활동 중이며 <모든 일>은 <그것>의 계획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0월 20일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나는 내가 여기서 말한 것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미친 소리로 들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에게 나의 경험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가 여기서 이것을 공유함으로써 최소한 어떤 사람들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정화 작업이 그들을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이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이해와 ‘아하!’의 순간은 오직 직접 경험할 때에만 올 것입니다. 그것을 에둘러 가는 길은 없습니다.

내가 아이러니컬하다고 느낀 것은 일단 누구라도 이 <의식의 바다>를 경험한다면 그것의 본성이 아기처럼 간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베일을 쓰고 있는 개체들에게 그것은 신비스럽고 복잡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난다가 왕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기본적인 본성은 가장 단순하고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존재 방식이며, 복잡성은 그것의 창조물 속에서 나타나지만, 그 모든 것이 세워진 기초는 극히 단순하며, 그 속에는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이 있습니다.

바다는 인간이 아니며 그러므로 사람처럼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감정이나 도덕률을 가지지 않으며—그것은 어디에나, 그리고 모든 것 속에 있습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그것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지배 하에 있으며, <바다>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이기에 불확실성이나 놀람도 없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모든 것의 <원인_CAUSE>이며—이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극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불확실하거나 놀람으로 인지할지도 모르는 것들도 바다의 활동의 효과일 뿐입니다.

나는 아직 바다와 직접 연결 상태에 있지 않으며, 나는 아직도 선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고통이나 시련 등등 보다는 즐거움을 더 선호할 것이고, 이것은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일이며; 거기에 잘못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몸과 형상을 갖춘 것으로 정의하지 않는 의식의 한 점으로 자신을 체험할 때 일들은 매우 다르게 감지됩니다. 나의 의견으로는 이것이 ‘선호 없음’의 특징이 적용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나는 어느 밀도에서도 나의 몸이 고문 당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이보다 높은 비화신_unincarnated의 수준에서 보면 모든 것이 언제나 좋으며 의식의 한 점은 고통이나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도 이 두 가지 견해를 어떻게 절충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다입니다. 나는 여러분 중 누군가가 바다의 이런 것들에 대하여 자신만의 일별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정말로 창조주를 묘사하는 말로 바다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거기에는 물의 성질을 반영하는 이러한 순응성과 유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논평: 그가 마지막에 말한 것은 내가 여러 해 전에 ‘신의 마음_the Mind of God’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을 때 보았던 것과 완전히 들어맞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곳에서부터 모든 것이 나타나고 그 속으로 모든 것이 다시 녹아서 되돌아 갔습니다. 그의 체험과 나의 것은 또한 물리학자 데이비드 보옴의 홀로그램의 움직임에 대한 묘사—‘감춰진 질서_implicate order’의 깊은 층으로부터 ‘드러난 질서_explicate order’의 표면으로 올라온 다음, 다시 감춰진 질서 속으로 되돌아간다는—와도 일치합니다.

주재자들은 바다(대양)/창조주와 그것이 발현하는 것과의 관계에 대해서 두 개의 메시지, ‘흐름에 맡기세요—신의 마음과 하나 되면서’ 및 ‘신의 게임’에서 이와 비슷한 유동적인 관계를 묘사하였습니다.

창조주/대양과 분리된 것으로 체험하는 우리의 경험은 환상입니다; 시간을 통한 우리의 여정 중 어느 시점에선가, 그 환상은 떨어져 나갈 것이고 우리는 이 페이지에서 묘사된 것을 직접 경험할 것입니다. 나는 이 정보가 여러분이 그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봉사 중인,
사라/아도나/오리올

© 저작권  1999-2025 Celestial Way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새처럼 높이 떠서 내 어린 시절부터의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자체에서 빛이 나는 플라즈마와 같은 표면을 갖고 있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뻗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