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죽지 않아도 됩니다

이 웹사이트의 자료는 3 종류의 청중들을 의중에 두고 있습니다 :

1) 지금, 현재 자신들의 환생의 플랫폼으로부터 테라로 가는 여행을 하는 집단;

2) 현재 자신들의 몸을 버리고 (즉, “죽고”) 테라에 태어나는 첫 번째 세대로 환생할 집단; 그리고

3) 현재 자신들의 몸을 버리고 (즉, “죽고”) 마침내 테라에 환생하기 전까지 3차 밀도 체험을 좀 더 이어갈 집단.

우리들 각자는 특정한, 그리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들의 <상위 영혼들>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위의 목록의 첫 번째 집단에 속해 있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목표는 우리의 현재 환생으로부터 테라로 이주할 것을 요구할 터인데 이는 두 번째 집단이 환생할 수 있도록 그들의 태아를 품기 위한 성인의 몸(성체)들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물리적(신체적)인 형태를 변환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그 변환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집단에게는 요구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그 변환이 얼마나 심오할 것인지를 고찰하는 것이 우리들 모두에게 유익할 것으로 느끼는데,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는 그것을 해야 할 자신만의 시간이 오면 결국에는 그것을 체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비는 물리적 변환에 대한 상징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곤충의 정상적인 일생의 주기는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하는 물리적인 변환(변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하는 물리적인 변환(변태)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하는 물리적인 변환(변태)

알에서 깬 애벌레가 잎사귀를 먹기 시작하면, 그것은 다른 모든 애벌레들과 동일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몸통은 많은 분절로 이루어져 분절마다 각기 한 쌍의 다리가 있어서 매우 많은 다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의 입은 이파리를 씹기 좋게 되어있고, 그것의 눈은 비교적 단순하며 종종 머리에 튀어나온 돌기 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비꼬리 나비의 애벌레
제비꼬리 나비의 애벌레

그것의 몸은 부드럽고 유연한 피부로 덮여 있고, 돌아다니려면 바닥을 기어야만 합니다. 애벌레는 자라나면서 하나의 이파리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 다니며 조용히 잎을 갉아먹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때가 되어 내부적인 타이밍 기전이 깨어나면 애벌레는 자신의 주위에 실을 감아서 고치를 형성하고 마침내는 그 안에 완전히 갇히게 됩니다. 고치는 딱딱해지고 그 다음에 가장 기적적인 변환이 일어납니다.

애벌레는 자신의 주위에 실을 감아서 고치를 형성하고 마침내는 그 안에 완전히 갇히게 됩니다.
애벌레는 자신의 주위에 실을 감아서 고치를 형성하고 마침내는 그 안에 완전히 갇히게 됩니다.

고치 안에 안전하게 움츠린 상태에서 애벌레의 몸은 문자 그대로 녹아버립니다. 오직 심장만이 아직 뛰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형체가 전혀 없는 유기적 물질의 끈적거리는 “수프”입니다. 만일 그 시점에 고치를 열어 버리면, 그 “찐득한 물질”은 결코 아무 것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말라버리고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해를 입거나 훼방 받지 않는다면, 그 “찐득한 물질”은 전혀 다른 모양을 형성하여 — 나비로 발달할 것입니다.

부드러운 피부 대신에 그것은 딱딱한 껍질을 형성합니다. 잎을 갉아먹는데 적당한 입 대신에 그것은 긴 튜브를 발달시키는데, 그 튜브는 단단하게 나선형으로 말려 있어서 꽃 안으로 깊숙이 찔러 넣어 꽃 꿀을 빨아 먹기에 적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눈은 머리의 일부를 형성하며 매우 복잡합니다. 수많은 분절 대신에, 각기 한 쌍의 다리가 달린 오직 세 개의 분절만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기어야만 했던 대신, 섬세하고 정교한 막, 골격, 그리고 근육계가 형태를 갖춥니다. 그것은 나비의 날개가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비밀리에, 혹 있을 지도 모를 포식자의 눈으로부터 감추어진 채로 일어나지만, 진실로 그것은 자연의 기적 중의 하나입니다.

마침내, 모든 것이 완료됩니다. 나비는 고치에서 벗어나서 나뭇잎이나 줄기 위에 앉지만, 날개는 작고 고치 안에서 심하게 접혀 있던 탓에 쭈글쭈글하게 구겨져 있습니다. 그 때 나비의 심장이 날개에 액체를 뿜어 보내고 날개는 펴집니다. 날개는 점점 펴지면서 완전한 크기와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마침내 날개가 공기 중에서 마르면서 골격이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나비는 처음으로 비상하는데, 과거의 애벌레였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물이 됩니다.

나비는 과거의 애벌레였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물이 됩니다.
나비는 과거의 애벌레였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물이 됩니다.

그러면, 애벌레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것은 죽은 걸까요? 아니요,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형태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죽는다는 것은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뜻하는데, 뒤에 남겨진 몸은 보다 기본적인 원소들로 분해되고, 그 사이에 영혼은 이동해서 다른 현실의 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혼은 몸에서 분리되고, 몸을 뒤에 남기는데 영혼은 현실의 다른 계로 이동합니다.
영혼은 몸에서 분리되고, 몸을 뒤에 남기는데 영혼은 현실의 다른 계로 이동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죽는 것. 옮긴이)을 너무 많이 해 왔기에 우리 존재의 다른 단계로 이동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가 “죽지(몸을 뒤에 남겨 두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로운 지구, 테라를 위한 “새로운 우리들”이 되기 위해서 죽을 (즉, 우리의 몸을 뒤에 남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형태를 바꾸어야만 합니다.

다양한 영적인 기록들이 “영광된 몸”에 대한 기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 언급되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형태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스펙트럼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이 조밀한 물리적인 몸으로부터 수많은 단계를 거쳐 — 위 단계는 그 아래 단계에 비해서 보다 섬세한 물질로 되어 있습니다 — 순수한 의식과 빛으로만 되어 있는 단계까지 펼쳐져 있는 현실의 스펙트럼의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만일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빛은 여러 가지 색깔의 띠로 갈라지게 됩니다.
만일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빛은 여러 가지 색깔의 띠로 갈라지게 됩니다.

만일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빛은 여러 가지 색깔의 띠로 갈라지게 됩니다. 햇빛이 물방울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무지개에서 이 빛깔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물방울들이 각기 작은 프리즘으로 작용해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색깔들의 띠로 햇빛을 분산시켰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순수한 빛이 현실의 각기 다른 띠 — 다른 “계_planes”, 혹은 “밀도/차원_densities/dimensions” — 들로 분산되면서 그 빛은 각기 다른 주파수로 진동하는데, 각 빛깔을 나타내는 빛의 진동 주파수가 서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차 밀도 물리적인 물체의 수준에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육안으로 빨강(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가장 낮고 느린 주파수)에서부터 보라(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가장 높고 빠른 주파수)까지의 색깔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 아래에도 빛이 있고 (이를테면 적외선),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 위에도 빛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자외선). 그 빛들은 <거기>있지만, 우리의 감지 도구(이 경우에는 우리의 육안입니다)가 어떤 범위의 주파수를 감지하는데 제한이 있으므로 그것들을 감지(인식)할 수 없습니다.

테라로 가는 도중에 우리가 실행하게 될 변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파수를 바꿀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것이 아닌 다른 범위의 주파수를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테라는 이미 — 바로 여기, 바로 지금 —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인식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녀가 점유하고 있는 주파수대로 진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그녀를 보고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 주파수, 그리고 인식의 전이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것들은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실 스펙트럼의 각기 다른 “계_planes”, 혹은 주파수대는 확실히 구분되는 주파수 범위에 걸쳐서 진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각 “형태(모양)”는 그것이 점유하고 있는 주파수대로부터 자신의 특징을 얻습니다. 우리는 현실 스펙트럼의 각 부분에 있어서 각기 다른 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각기 다른 주파수대에서 내가 점유했던 4 개의 다른 몸들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매우 다른데 각 몸은 그것이 존재하는 특정 주파수대에서 적당한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몸들은 이 수준의 현실에 있어 우리에게 적당한 신체(또는 수송 수단)인데, 애벌레의 몸이 기어 다니는 벌레로서 독특하게 적응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테라에 거주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수준의 현실에 알맞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몸으로 변형되어야만 합니다.

메시지에서 우리는 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애벌레 — 나비의 변형과 비슷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단지 형태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며 생명의 흐름은 차단되는 일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테라에 물리적으로(신체를 가지고) 거주하기로 되어 있는 우리들은 죽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단지 형태만 바꿀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 일을 실행하는 중입니다.

아기들이 태어남의 과정을 거쳐 이곳 지구에 육화 하듯이, 탄생이라는 과정을 거쳐 테라에 육화 하는 존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기들을 만들고 양육할 정자와 난자, 그리고 자궁들은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정자와 난자와 자궁은 그냥 공기 중에서 물질화해서 아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정자와 난자와 자궁은 그냥 공기 중에서 물질화해서 아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정자와 난자와 자궁은 그냥 공기 중에서 물질화해서 아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지구에 “씨를 뿌리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성체(어른)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어디에선가 와야만 합니다. 이것이 작전 테라의 목적의 일부로서: 새로운 세계를 위한 종자가 될 종족을 모으는 일입니다. 우리들(목록의 첫 번째 집단) 중 일부는 완전히 새로운 종의 존재의 선조가 될 운명이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알맞은 몸으로 우리 자신을 변형시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우리 몸도 가지고 갈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애벌레-나비의 예에서 애벌레는 단지 모양만 바꿀지 모르지만, 나비는 결국에는 일생을 마치고, 새로운 세대의 애벌레를 위해 알을 낳고, 그리고는 “죽는다”(자신의 몸을 뒤에 남긴다)는 점을 지적할지도 모릅니다. 3차 밀도의 나비에게는 그 말이 맞지만, 우리가 우리의 의식을 다음 단계의 존재의 의식으로 완전히 변환시키면, 우리는 그 이후의 삶을 마칠 때마다 계속 거듭해서 의식적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다시는 우리의 몸을 뒤에 남기는 (즉, “죽음”을 뜻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다시는 “죽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변환은 꽤 많은 숫자의 — 사실상 수백만의 — 사람들에게 일어날 예정이므로, 3차 밀도 지구가 4차 밀도로 전환해야 하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일이 일어나려면 그 과정이 잘 수립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진실로 우리의 신체적 나이에 상관없이 경전(성서)에서 말하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작전 테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개척자가 될 사람들을 모아 들일 것입니다. 이 전체 책은 그 특별한 과정과 여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들이 일어나는 전후 사정(맥락)을 고려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평화와 축복을,
사라/아도나/오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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