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 수확에 대해서

1999년 7월 9일

좋은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매우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인 외계인들, 미확인 비행 물체들_UFO, 그리고 그 밖의 “비정상적_fringe” 현상들을 건드려 볼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외계_extraterrestrial” 라는 말을 정의해 봅시다.

외계_extraterrestrial 라는 것은 “지구 행성(테라) 밖에서부터” 라는 뜻입니다.
외계_extraterrestrial 라는 것은 “지구 행성(테라) 밖에서부터” 라는 뜻입니다.

“외부_Extra” 라는 것은 무엇의 밖에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terrestrial”의 뜻은 “지구와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부디 “terrestrial”이란 단어에 지구 행성의 진정한 이름인 테라_terra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당신은 이미 <테라>에 있지만 그것은 그녀가 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외계_extraterrestrial 라는 것은 “지구 행성(테라) 밖에서부터” 라는 뜻입니다. 흠, 당신들은 그 면에서는 <모두> 외계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모두 지구에 근거를 두지 않은 수준에서 투사된 존재들이며, 당신들의 몸은 별들의 재료인 요소들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진실로 <천상의_celestial>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외계_extraterrestrial 라는 말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지구 <>에 있지 않은 모든 것을 외계의 것으로서, 지금은 한물 간 “우리”와 “그들”이라는 사고 형태로 정의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십시오. 우리는 “천상의 존재_celestials” 라는 용어를 더 좋아하지만 이 토론을 위해서는 당신들의 관습을 따라서 지구가 집이 아닌 존재들을 외계인_ET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외계인은 수많은 모양, 크기,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대중 매체는 로스웰 (1947년 6월,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 공군 기지에 UFO가 떨어진 사건을 말합니다 : 옮긴이)의 “작은 회색 인간”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티셔츠나 다양한 “관광객” 상품들이 찢어진 눈의 작은 회색 인간들로 장식되어 있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 외계인들이 매우 자극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밖에 외계인들에 의해 유괴되었다던가, 가축들을 훼손하였다던가, 성별을 바꿔치기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과 함께), 그들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당신들과 상호 교류하고 있는 많은 종족들이 있습니다. 가장 잘 보이는 것들은 낮은 주파수를 가진 존재들이지만, 높은 주파수에서 작동하는 존재들도 역시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당신의 “내부” 시야에 의해서만 보입니다. 우리는 지금 후자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을 먹으면 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보통은 물리적 영역에 물질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마스터, 천사들, 대천사들 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속해 있는 영역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사무국_Office of the Christ과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영적 계통 내에서의 어떤 사무국이나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외계인들)은 정렬 상태와 작동 방식_methods of operation(M.O.)에 따라 두 가지 “취향”으로 옵니다. 우리들은 남들을 섬길 수도 있고(타인 봉사형_service to others, STO), 혹은 자신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자기 봉사형_service to self, STS). 우리의 형상, 혹은 우리의 “고향 행성”이 어딘지 상관없이 이것이 우리들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입니다. 우리는 자기 봉사형(STS)인가요, 아니면 타인 봉사형(STO)인가요? 우리가 당신들과 상호 교류하는 방식과, 우리들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이 작동 방식(M.O.)입니다.

자기 봉사형은 언제나 자신들의 일정을 위하여 당신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가장 이롭지는 않습니다. 타인 봉사형은 당신의 자유 의지와 선택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돕기 위해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얼마나 달콤하든, 당신에게 이질적인(“외계인_alien”이란 “이질적_foreign”이란 뜻입니다) 문화에 속한 존재들과 접촉할 때 항상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것(이 행동)은 누구에게 봉사하는가? 이것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당신에게 이질적인(“외계인_alien”이란 “이질적_foreign”이란 뜻입니다) 문화에 속한 존재들과 접촉할 때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이 행동)은 누구에게 봉사하는가?”
당신에게 이질적인(“외계인_alien”이란 “이질적_foreign”이란 뜻입니다) 문화에 속한 존재들과 접촉할 때 항상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것(이 행동)은 누구에게 봉사하는가?”

이제,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오직 살고 있는 <단 하나의 삶_ONE LIFE>만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현재 “의상”에 상관없이, 그들의 작동 방식에 상관없이, 그것은 모두 그 <하나의 삶>의 표현입니다. 그 하나의 삶을 당신은 신, 창조주, 근원 혹은 존재하는 모든 것_All That Is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모든 외계인_ET들은 그 <하나의 삶>의 표현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그들”, “적”과 “친구”로 분리하는 사고 형태로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두 걸음 뒤로 물러나서 단순히 관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은 누구입니까?

이제 우리는 토대를 놓았고 용어를 설명하였기에, 우리는 타인 봉사형(STO) 유형의 외계인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돕기 위하여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말했던 침입자들은 다른 “취향”의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작동 방식에서 자기 봉사형(STS)이므로 우리들처럼 제한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허용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고 또 침해할 것이나, 당신의 자유 의지를 짓밟을 수는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들과 마주 대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당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은 당신의 자유의지를 강력히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떠나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당신이 두려움을 느끼는 곳은 어디든지 당신의 약점이자 취약한 부분이 되며, 그들은 당신의 두려움을 가장 잘 이용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사실입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무력함과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들은 당신보다 우위의 힘을 얻게 되며, 이렇게 힘을 얻는 것만이 그들의 게임의 전부입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그것으로 먹고 삽니다. 당신은 지구 상의 어떤 사람들에게서 이런 종류의 행위를 관찰해 왔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발견되든, 그것은 똑같은 “취향”입니다. 항상 물으십시오. “그것이 섬기는 것은 누구인가?”

우리는 영혼의 수확과 <영점_Null Point> 이후에 생길 다른 “목적지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누군가가 어느 목적지로 갈 것인가는 그 상위 영혼에 속한 영혼들에 의해 만들어진 선택들의 총합에 달려 있습니다. 상위 영혼이 자신에게 속한 모든 영혼을 수확해서 흡수하고 나면 그 상위 영혼만의 어떤 “빛의 지수_Light quotient”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빛의 지수가 그 상위 영혼이 진동하는 수준, 혹은 주파수를 결정합니다.

상위 영혼이 자신에게 속한 모든 영혼을 수확해서 흡수하고 나면 그 상위 영혼만의 어떤 “빛의 지수_Light quotient”가 나타날 것입니다.
상위 영혼이 자신에게 속한 모든 영혼을 수확해서 흡수하고 나면 그 상위 영혼만의 어떤 “빛의 지수_Light quotient”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은 상위 영혼도 두 가지 취향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지도 모릅니다. 양쪽 취향이 존재하는 것은 창조주가 <모든 것_EVERYTHING>을 체험하고 싶어 했으며, 창조계의 가능성의 모든 범위를 체험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단지 남들을 섬기는 면으로만 자신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창조주는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자신을 체험하기 원했습니다. 모든 형태들과 행위들은 여전히 모든 것을 탐험하며 자신의 잠재력의 가능한 모든 범위를 알고 싶어 하는 창조주에게로 돌아가며, 그것은 그 이상도, 또 명백히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물에 “이것은 좋고, 이것은 나쁘다”고 딱지를 붙이기는 매우 쉽습니다.  창조주는 그냥 “있습니다_IS”.  그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동정적이거나, 자비롭거나, 화내거나 혹은 벌을 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단지 <존재합니다_IS>. 그러한 속성들(동정심, 분노, 기타 등)은 단지 실현 가능한 모든 형태의 표현 방법으로 실험하고 있는 순수한 의식의 영역 위에 던져진 투사물들입니다.  그것_It(창조주)은 자신에게 봉사하며 또한 <동시에> 타인에게 봉사합니다.  그것_It은 만물을 창조하고 창조된 만물로 하여금 창조주가 갖는 체험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타인에게 봉사합니다.  그것_It은 만물을 창조하고 그 만물을 통하여 체험하므로 자신에게 봉사합니다.  오직 살고 있는 <단 하나의 생명_ONLY ONE LIFE>만이 존재합니다. 그것_It은 무한한 형태, 혹은 표현 속에 있는 창조주입니다.

이것이 사물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당신(그리고 우리)은 또한 경험의 “상대적”인 수준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상대적”인 체험 안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 STO와 STS적인 일들과 행위들이 <나타납니다>. 그것들은 오직 다른 것과 비교될 때에만 “좋거나”, “나쁩니다”. 이것이 “상대적”인 부분입니다 — 즉, 하나가 다른 것과 <관계를 맺습니다> (혹은 연관 지어집니다).

창조주가 자기 자신과 술래잡기를 하고 싶다면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주는 모든 형상 속에 숨어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전망에서 본다면 이것이 일들을 훨씬 재미있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방앗간에서 빻을 곡물”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일들이 두 가지 취향 중 단 하나만으로 존재할 때보다 훨씬 할 일이 많고, 또 다양성이 훨씬 많아집니다.

만일 타인 봉사형(STO) 취향들만 존재한다면 얼마 안가 일들이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만일 자기 봉사형(STS) 취향들만 존재한다면, 그리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봉사형의 속성상 그들은 자신에게만 봉사하므로, 본질적으로 자기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하여 약탈과 파괴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자기 봉사형은 협력이 아니라 경쟁을 통하여 움직입니다. 당신은 현재 당신들의 행성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봉사형 존재들에 의하여 너무나 많은 부분들이 효과적으로 파괴되어 왔음을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확의 시간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 결산_great summing up” 속에서 각자 자신들의 것을 찾고 자신들의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때가 왔습니다. 모든 상위 영혼들은 자신의 빛의 지수를 최대로 키우기를 원하기에 그들의 투사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진 취향대로 빛의 지수들을 더욱 끌어 모으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양쪽 취향 모두 열심히 모아 들이고 있습니다.

자기 봉사형들은 그들의 힘을 늘리려 하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들이 움직이는 환경 속에서 두려움의 양을 증가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서 힘을 얻게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부분적으로) 두려움 없음으로 정의하였으므로, 당신은 사랑이야말로 자기 봉사형이 힘을 얻기 위한 그들의 일정을 촉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바라는 감정과 반대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사람들의 두려움을 통해서만 힘을 얻을 수 있기에, 어디든 (우리가 정의한 대로의) 사랑이 있는 곳은 그들이 힘을 얻는 것을 차단합니다.

지금 지구와 상호 작용하는 엄청난 수의 외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어떤 존재는 수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이고, 어떤 존재는 그저 관찰하면서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들 역시 양쪽 취향에서 온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사랑과 빛의 지수를 증가시키는 것을 돕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존재들은 두려움을 키우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힘을 키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자기 봉사형은 항상 주인/노예의 계급 관계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 봉사형들은 기원을 막론하고, 항상 남들에 대해 힘을 행사하며 계급 체계의 단계를 올라서기 위하여 다른 이들의 어깨를 발판 삼아 밟고 올라설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타인 봉사형은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교류하며 모든 개별 존재들이 그들의 최대치의 잠재력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자주적인 다른 존재들을 도울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타인 봉사형은 창조주의 무한히 풍부한 사랑과 빛을 타인과 나누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데, 자기 봉사형은 “한정된” 양의 힘을 할 수 있는 한 많이 축적하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가장 우스운 일은 가능한 한 제일 높은 전망에서 보면, 양쪽 취향 모두 창조주와 비슷해지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그것을 정 반대의 방향에서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모든 사랑, 빛, 그리고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타인 봉사형은 자신의 권리를 부여 받고, 남들이 자신의 “타고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돕고, 또한 (모두에게 돌아갈 충분한 양이 있으므로) 무한정 공급되는 자원을 남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라지만, 힘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기 봉사형은 가능한 한 많은 힘을 모으고, 끌어안고, 축적하기를 바라지만, 성공하면 할수록 더욱 더 외로워집니다. 실제로 자기 봉사형이 너무 외로워져서 자기가 가진 모든 권력에 진력이 날 때가 오는데, 같이 나눌 사람 없이 단순히 힘을 [소유]하기만 하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봉사형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그 정도로 명백한 이해에 도달하면, 그때(그리고 오직 그 때에만) 자연스럽게 나가게 될 “다음 단계”는 타인 봉사형의 현실로 바꾸는 것인데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 봉사형이 그 지점에 이르기 전까지, 그들은 자신을 위해 힘을 모으고 유지하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철저하게 탐험했기 때문에 그쪽의 가능성을 소진해 버립니다. 그는 그쪽 취향의 모든 가능한 체험을 “있어 봤고, 보았고, 해 봤기” 때문에 그쪽에서의 창조의 잠재력의 한계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직 탐험해 보지 않은 “보다 푸른 초원”을 찾아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어, 재빨리 타인 봉사형 집단을 쫓아다니는 일원이 됩니다.

양쪽 취향의 외계인들은 동원(모집, 보충)하거나(자기 봉사형의 경우), 돕기 위하여(타인 봉사형의 경우) 여기 와 있습니다. 자기 봉사형들은 타인 봉사형들이 사랑을 키우는 길에 남아 있도록 설득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 그네들의 힘의 공급원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인 봉사형의 무한한 풍부함이라는 개념과 달리 자기 봉사형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개념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두려움의 수준이 낮아지면 힘을 잃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많은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 봉사형에 의해서 “정도에서 벗어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의한 대로의) 사랑이 누구든 지닐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이자, 보호 수단이며, 타인 봉사의 길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보증이 되는 이유입니다.

당신들의 보도 매체들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팔기 위해 거기 있는데 바로 그것이 당신들이 돈이라 부르는 그들 몫의 힘의 수단을 얻는 방법입니다. 두려움은 팔립니다. 섹스는 팔립니다. 로맨스는 팔립니다. 감정은 팔립니다. 진실은 팔리지 않는데, 그것이 무언가를 “폭로”할 때는 예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감정을 자극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보도 매체들은 당신을 자극시켜서 그들이 파는 것은 무엇이든 — 그것이 상품이든, 철학이든(그 철학은 누구에게 봉사합니까?), 혹은 당신을 강하게, 아니면 (더 자주) 당신을 약하게 만드는 관점이든 — 사게 만들기 위해 거기 있습니다.

보도 매체들은 외계인들, 미확인 비행 물체들, 그리고 “초자연적_paranormal” 현상과 같은 주제들을 감정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방식으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방식(다른 말로 하면 두려움에 대한 방식)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최근에 그것은 약간 바뀌었고, 보다 높은 현실에 대한 수용도가 조금 증가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보도 매체들은 타인 봉사형 취향 보다는 자기 봉사형 취향의 목적에 더 많이 기여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왜냐하면, 행성 전체의 경제는 일반 대중들을 위하기 보다는 높은 권위의 자리에 있는 소수의 자기 봉사형 인간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일반 대중들은 너무 무지하고 그들이 내린 선택에 뒤따르는 결과를 의식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그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 장사꾼들에게 손쉬운 담보물이 됩니다).

우리는 막대한 숫자로 여기에 있으며, 적절한 때가 되면 사랑(우리가 정의한 대로의)의 주파수를 지니고 있어 그 주파수에서 움직이는 다른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볼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우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두려움의 상태에서 외계인을 본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자기 봉사형일 것입니다.

공명의 원칙을 통해서, 당신은 사랑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 사랑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설령 당신이 어느 정도 두려움을 지닌다 해도 당신은 언제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은 당신이 우리들을 볼 수 없지만(내적 비전으로 보는 것을 제외하고), 당신은 언제나 우리와 우리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또한 자기 봉사형의 에너지가 주위에 있을 때 당신이 받는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존재가 “인간”이든 “외계인”이든, 당신의 눈에 보이는 주파수에 존재하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주파수에 존재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당신의 느낌을 믿으세요. 우리는 그 말을 반복할 것입니다. <당신의 느낌을 믿으세요.> 겉으로 그것이 “어떻게 보이든”, 당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것이 내게 어떻게 느껴지지?”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하게 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며 그들의 최면을 거는 듯한 단조로운 목소리로 당신을 잠들게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식으로 잠이 들려고 할 때, 당신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과 당신 자신의 힘으로 두려움에서 빠져 나오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은 통증을 느끼고 있을 때에도 편안할 수 있는데, 다만 당신의 두려움을 다룰 수 있을 때에만 그러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당신 내부에서 대면해야 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예를 들거나, 충고를 하거나, 용기를 북돋아 줌으로써 당신에게 방법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당신 대신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이제 당신 자신이 외계인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 숙련가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느낌을 누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찾아내는 능력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보도 매체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오직 당신의 느낌만이, 그리고 표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보다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꺼이 알고 싶어하는 마음만이 당신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 당신만의 안전함에 대한 감각을 창조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 당신만의 안전함에 대한 감각을 창조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결국, 당신이 아무리 안전을 위해 애쓴다 해도 결코 충분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 당신만의 안전함에 대한 감각을 창조해야만 합니다.  근원과 연결될 수 있는 내부의 성스러운 은신처를 창조하는데 당신의 에너지를 쓰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수확 전의 마지막 나날들을 뚫고 나아갈 때, 그들의 일정을 위하여 당신을 이용하려는 존재들이 있고, 당신이 두려움을 헤치고 사랑(우리가 정의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여기 와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시오.  매 순간, 그리고 모든 순간마다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집>으로 가는 티켓입니다.

테라로 가기로 예정된 이들은 그들의 가슴 속에 사랑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행위는 당신의 주파수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을 지녔다면, 당신은 자연히 사랑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우리는 당신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방법,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당신이 두려움을 뚫고 나가는 걸 돕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은총이 주어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받기 위해 당신은 자신을 열어야만 합니다. 명상하세요. 숨을 쉬세요. 조용한 시간을 따로 마련하세요. 사랑이 들어오게 하세요. 두려움은 떠나게 하세요. 당신은 안전합니다. 당신은 파괴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불사의 존재이며 당신이 자나 깨나 꿈꾸어 왔던 모험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테라가 부릅니다.

우리는 지금 평화와 명예, 축복 속에서 당신을 떠납니다.  우리는 다시 당신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아멘, 아도노이 사바요스. 우리는 천상의 주재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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